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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21

금요일에 쓰는 월요병

mcJ 2021. 2. 26. 19:00

전에 다니던 투자회사의 오너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전 사원이 (심지어 해외지사 투자심사역들까지; 시차무관) 참여하여 한 주간의 업무와 이슈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였는데, 특히 매월 첫째주 월요일에는 모두가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1분 스피치, 5분 스피치 같은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모두'가 한 문장 만이라도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었다. 큰 타원형의 회의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해외 지사와는 비디오 컨퍼런스 콜로 연결하여 모두가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그 분위기는 한 명이 끝나면 반시계 방향의 그 옆 사람에게 turn이 돌아가는 상황이라, 마치 엠티에서 자기소개하기같은 느낌이면서도 은근 압박감이 몰려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나 역시 태생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당시 임원급이나 시니어 급의 투자자들이 하는 이야기의 깊이는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없었던 듯하다. 즉, 컨텐츠의 부실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그 컨텐츠를 위해 며칠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반대로 다른 일 때문에 월요 전체 미팅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횡재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월요일을 앞둔 주말은 진심을 다해 쉴 수 있었다. 

 

그런 전체회의의 어느 날, 오너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월요병이라는 단어가 있다면서요? 그런데 직장인들 월요병을 없애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그건, 일요일 오후에라도 한 번 출근해서 몸과 마음을 일하는 준비를 하게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실소와 농담섞인 투정을 부리면서 회의가 웃으며 끝나긴 했는데, 난 그 날 오너의 얼굴을 자세히 봤었다. 월요병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는 '왜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게, 아무튼 있다고 들었는데, 이걸 이야기하면 직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오너로 보여지겠지?'라는 얼굴이었다가, 월요병의 솔루션을 제안할 때의 표정은 '약간의 농담과 함께, 미리 준비하는 팁은 다들 기발하다고 생각하겠지?' 정도였달까? 아무튼 전체 분위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의 반응으로 나타나자 오너는 조금 당황하면서 그렇게까지 회사가 나오기 싫으냐..라는 말을 작은 목소리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이 나름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고 넘겼지만, 오너는 생각보다 진지했던 것 그리고 그러한 어이없는 이야기에도 오너는 본인 스스로 직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직원들이 받을 것으로 기대하며 그 이야기를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세상살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중, 불가능에 가까운 것들 중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아니었던가. 

 

월요병이 심하던 회사 생활일 수록, 금요일이 주는 해방감과 주말이란 시간이 주는 달콤함은 더욱 컸던 것 같다. 물론 주말이 시작되며 누린 해방감과 달콤함을 일요일 오후부터 고스란히 반납하게 된다는 점이 어찌보면 조삼모사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퇴근하면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회사와 금요일 밤부터 토/일을 연속해서 쉬는 주말은 '쉼'이라는 것이 주는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었더랬다. 

 

나역시 본인 스스로의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사실 월요병이라는 단어 자체에 관심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월요병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 공감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럼 월요병이라는 단어에 대해 느껴지는 것이 없어졌으니, 금요일이 주는 주말에 대한 기대감과 해방감도 없어져야 하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애매한데, 대체적으로는 주말이라 특별히 신나고 안락한 쉼을 얻지는 않는 것 같다. 

 

본인 회사를 운용하면서 지난 기간 동안 휴가다운 휴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가 휴가가 필요한 이유도 크게 발견하지 못했고, 휴가를 가서 물리적으로 회사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전화기와 인터넷 연결 된 랩탑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휴가의 큰 의미는 없었던 듯하다. 

 

금요일이고 이제서야 다음 주 월요일이 삼일절이라 쉰다는 이야기를 비서를 통해 듣고서 써본 단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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