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근심

우리 삶에는 걱정이 많을까 근심이 많을까. 어릴 때 나는 내 스스로의 사전(dictionary)을 만들고 싶어했었다. 그 때부터 이미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자신이 있었는지도..ㅎㅎ 그리고 그런 자신감을 뽐내고 싶었던 관종끼도 있었던 듯 하다. 사춘기 시절에 읽었던 소설 '개미'의 작가인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청소년때에 썼던 사전이 모티브가 된 것도 있었을 듯 하다. 하지만 글쓰고 그것을 정리하는 데에는 대단한 의지와 열정이 필요하고 거기에 장시간의 노력이 투영되어야 하니, 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 지금처럼 컴퓨터와 언제든 싸지를 수 있는 이런 익명의 블로그가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ㅎㅎ)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냐면, 내 스스로 정의내리는 걱정과 근심에 대해서다. 걱정과 근심은 둘 다 미래에 발생될 수도 있는 어떠한 일들에 대한 마음씀 정도의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시간'이다. 걱정은 단기적, 근심은 장기적 관점이랄까? 

 

내일 당장 카드값을 내야하는데, 오늘 통장 잔고가 텅텅이라 마음이 계속 쓰인다면 그것은 '걱정'이고, 본인이 일하는 분야의 흥망성쇠 (e.g PDP engineer; 2000년 초반, PDP vs LCD의 전쟁에서 차세대 평판 디스플레이를 담당한다는 사명감에 목에 힘이 이빠이 들어간 PDP 엔지니어들을 구미에 가면 그렇게 많이 볼 수 있었다. 산업과 시장의 선택이 LCD로 기울면서 PDP 사업의 전면 중단으로 대부분의 PDP 엔지니어들은 힘들 길을 가야했다.) 또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의 원론적으로 보이지만 신경쓰기는 해야할 것 같고 그렇다고 내일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할 것도 아닌 장기적인 그 무언가가 '근심'이다. 

 

내가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렇긴 한데, 이 걱정과 근심을 가끔 내 스스로 체크해보곤 한다. 마치 아이폰의 에어팟처럼.. 왜, 에어팟은 쓸려고 뚜껑을 열면, 아이폰 화면에 'xx의 에어팟'이라고 뜨면서, 에어팟 배터리 잔량과 에어팟 케이스 배터리 잔량이 같이 퍼센테이지로 뜨지 않나. 그런 것처럼, 내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면서, 현재 내 상태는 근심 몇%에 걱정 몇%인지 체크해본다. 

 

그래서 내가 현재 상황이 어떤지 보는데, 요즘 내 상황은 걱정이 근심을 추월한 느낌이다. 뭔지 모르게 단기적인 이슈들에의해 내 삶이 휘둘리고 있고, 몇 일 간의 간격으로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추가되면서 인생 매운맛 제대로 보고 있는 중이다.

 

내 친한 형은 나의 대운이 올해 들어서 바뀌면서 향후 3~4년간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거라고 올해 초에 가장 덕담스러운 덕담을 했는데, 인생 매운맛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2021년 상반기라 아직 온전히 턴어라운드가 안된건가 싶기도 하다. 그 형의 덕담은 새해 덕담임을 감안하고도 내게는 듣기 좋은 말 그 자체였지만, 그 형은 그렇게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 말을 하고나서 나에게 올해 투자할 (또는 투자한) 주식 종목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니, 실제 개인 주식투자는 내가 산 종목들은 따라서 샀고, 1분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고동락 중이다. 같은 종목에 담궈놨으니, 한 종목 올라가면 여지없이 톡이 와서 '오늘은 좋네..' 반대로 떨어지는 날에는 '어. 저거 왜저러냐.' 등의 메시지가 오는 게.. 그냥 던진 말은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상황이니, 내 스스로도 뭔가모를 자아 체면이 있었드랬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걱정이 한가득이니, 이걸 어찌해야 뒤집을 수 있을까.

 

걱정없이 근심 많은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건 마치 황푸강이 내려다 보이는 하야트 호텔에 며칠간 혼자 처박혀서 쓰고 싶은 글이나 조금씩 쓰면서, 책도 좀 보고, 남은시간 근심에 쩔어서 커피한잔 하면서 쓸쓸하지만 잘차린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느낌의 하루이다.